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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‘시간 점’ 쳐본 일 있습니까 - 김종남(37회, 광주전남언론인회 회장)
작성자일고지기
작성일2013/05/31 17:19
조회수: 2,28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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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시간 점’ 쳐본 일 있습니까 손목시계를 안차고 다닌 지 몇 년 되었다. 잃었다 찾았다 한두 번 소동을 피운 후 부터이다. 시간을 알고 싶으면 핸드폰을 꺼낸다. 번거롭다는 것만 빼면 좋은 점이 많다. 첫째, 시간을 덜 보게 되었다. 쓸데없이 자주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, 남 보기 좋지 않은 습관이 사라졌다. 최근에는 새로운 재미도 하나 생겼다. 다른 사람은 눈치 채지 못하는 재미다. 핸드폰을 열기 전 미리 현재시간을 점쳐보는 것이다. 그리고 얼마나 차이가 나나 계산해본다. 차이가 적으면 ‘내 시간감각이 괜찮구나!’ 기분이 좋아진다. 몸 안에 있는 생체시계가 세상흐름 따라 제대로 작동하고 있구나 하고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. 이 ‘시간 점치기’는 내가 창안한 것은 아니다. 어느 명상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 시도해본 것이다. 언제 새벽잠을 깼을 때다. ‘네 시쯤’이라고 짐작했는데 시계를 보니 두 시 반이었다.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덤으로 생겼다. 덕분에 뒹굴뒹굴 게으름을 부릴 수 있었다. 반대의 경우도 많다. 꿈꾸다 깬 것처럼 한두 시간이 하얗게 사라져버린다. 마치 날자 변경선을 넘어 온 것처럼 날짜가 헷갈릴 때도 있다. 외국 출장 때 시차 적응이 늦어 비행기 놓칠 뻔 했던 황당함은 지금도 생생하다. 이 점치기에 조그만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‘이게 세상살이에 무슨 도움이 될까?’ 의미를 생각해본다. ‘시간 점치기’를 권한 명상지도자의 의도는 무엇이었나! 기억이 어렴풋하다. ‘물을 한 모금 한 모금 씹듯 마시며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듯, 시간도 순간순간을 몇시몇분이라는 숫자로 바꿔 뇌리에 새기며 시간의 소중함을 인식하라’고 한 뜻 아니었을까!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. 며칠 전 시내에서 점심약속이 있었다. 걸어가느라 일찍 출발했다. 가는 길에 푸른길 공원에 들렀다. 황량하던 철로부지가 몇 년 사이 녹음 우거진 숲길이 되었다. 신록이 싱그럽다. 차 소리도 잠잠해지고 숲속처럼 새소리가 시원하다. 넓게 펼쳐진 느티나무그늘 벤치에 앉는다. 자전거를 탄 사람들, 자외선차단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, 지팡이를 끄는 노부부들, 오가는 인파도 심심치 않다. 앞 벤치에 머무는 사람도 자주 바뀐다. 대개 나이 드신 분들이 지나다 다리를 쉰다. 그런데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. 머무는 시간이 짧다. 1-2분, 기껏 5분이 못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. 관절염을 앓고 있다는 할머니도 3분이 못되어 지팡이를 끌며 일어섰다. 젊은 사람들이야 바쁜 게 당연하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무언가 다들 여전히 바쁜 모양이다. 왜 나이가 들었는데도 한가로움을 못 즐길까. 전후세대들은 대부분 젊을 때 혹독한 가난을 겪었다. 놀 시간도 없이 먹고 살기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다. 그러다 막상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면 그 걸 편안히 즐기질 못한다. 일 안하며 손 놓고 쉬는 것이 돈 낭비하는 것처럼 죄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. 아직도 그들에게 ‘시간은 돈이다’. 나 역시 5월의 산들바람이 살랑살랑하는 30분이 길게 느껴졌다. 시간 점을 칠 필요도 없는 짧은 시간인데도 세 차례나 핸드폰을 보았다. 약속시간이 강박감으로 작용해 삼십분이 그토록 묵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. 시간이 소중해지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. 푸른 길의 한가함에는 약속시간이라는 한계가 있었다. 인생시간의 한계는 죽음이다. 진정 ‘나이가 들었다’는 ‘나이’는 이 한계를 깨닫는 나이일 것이다. 한계를 인식하고부터 시간의 가치는 그 전 시간보다 몇 배 소중해진다. 모임을 끝내고 시내버스를 탔다.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열 명 중 일곱 명은 ‘수구리족’처럼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있다. 대개 젊은이들이다. 그들은 시간만 보는 게 아니다. 한가할 틈이 없다. 나도 핸드폰을 본다. 시간 확인은 핸드폰을 열 필요도 없다. 버스 안 정류장안내 문자판이 디지털 숫자로 시간을 알려준다. 고달픈 현재를 벗어나기 위해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본다. 시간 점치기로 미래시간을 볼 수는 없을까. 본다 해도 무슨 소용? 미래시간은 넘치게 있어도 당겨 쓸 수 없다.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이 시간을 몇 배 소중하게 쓰는 일 뿐이다. 진정 나이가 드는 것이다. 김종남(37회, 광주전남언론인회 회장) < 광주매일 2013. 05.29 > |